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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런 사전지식없이 <딸에 대하여>를 읽기 시작했다. 엄마와 딸 사이의 이야기는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라서. 대부분 답답하고, 슬프고, 끝없는 희생이 요구되는 안타까운 이야기들이지만, 그래도 나는 그 어려움 속에서 내비치는 두 사람간의 사랑을 좋아한다. 세상의 어떤 사랑과도 다른 사랑의 모습. 하지만 이 책에 나오는 엄마와 딸은 단순히 피를 나눈 두 사람에게만 국한되는 관계가 아니다. 요양보호사인 "나"와 딸 뿐만 아니라, "나"와 딸의 연인, "나와 젠, 이 사람들의 관계는 마치 엄마와 딸처럼 그려진다. 그런 의미에서 <딸에 대하여>가 여태까지 읽어왔던 소설과는 달랐다는 느낌이 들었나보다. 매우 사적이고, 닫혀 있는 것처럼 생각되는 관계를, 조금 더 펼쳐보이는 책이라서.
<딸에 대하여>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 소설이다. 이해도 없고, 용서도 없이 그냥 그렇게 끝난다. 하지만 그래서 더 좋았던 것 같다. 남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사회적 약자를 이해하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은 일이고, 자기가 다른 사회적 약자라면 자신의 취약함 때문에 때로는 다른 약자를 이해하기 힘들다. 그게 이 소설에 나오는 엄마와 딸 사이의 관계가 아닐까. "나"는 끝도 없는 노동에 시달리지만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나"의 딸은 성소수자이고 그 때문에 경제권까지 위협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하면 안되는 행동은 쉽게 알 수 있지만, 내가 해야하는 행동은 알기 힘든 법이다.
이 문제에 대해 이 이상의 답을 낼 수는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오랜 세월 어떤 한 가지 방식으로 살아온 사람이 갑자기 바뀌기는 힘들다. 그건 소설의 화자 스스로도 통감하는 바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생각을 바꾸지는 못해서, 적어도 잔인해지지 않을 수는 있다. 그게 이 소설의 화자가 선택한, 그리고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일이기도 하고.
화자는 이해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그건 작가도 마찬가지 아닐까. 김혜진 작가의 <중앙역>을 감명깊게 읽었었는데, 그건 그가 노숙자를 그려내는 시선 때문이다. 작가는 이 거리를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아닌 남의 아픔을 나서서하는 것의 어려움을. <딸에 대하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김혜진 작가가 선택한 이 주인공의 모습이 너무나도 마음에 든다. 왜냐하면 "나"는 억지가 없는 인물이라서다. 그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대한민국 아줌마"라는 전형적인 인물이면서, 그 전형성 때문에 개인의 모습이 사라지지 않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딸을 만나면서 화자는 "나는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누구든 언제든 나를 향해 너무나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내보일 것만 같다" (8)는 생각을 한다. 이 말을 읽으면서 왜 엄마가, 할머니가, 내가 아는 다른 아주머니들이, 나랑 같이 "젋은 애들이나 가는 곳"을 불편하게 여기시는지 처음 이해가 되었다. 이런 면에서 화자는 전형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또 화자는 소설에 등장하는 새댁이나 교수 부인과 같은 전형적인 인물들과 분리되어 있다. 자신이 하는 일을 심각하게 여기는 사람이기 때문에.
나는 또한 요양원에서 만난 젠과 독특한 관계를 맺는다. 젠에게 있어 자신을 돌봐주는 "나"는 엄마이기도 하고 딸이기도 하다. "나"에게 있어서도 젠은 소소한 일들까지 챙겨줘야하는 딸이기도 하고 또 자신의 문제를 토로할 수 있는 엄마이기도 하다.
작가는 젠과 화자 사이의 관계를 통해 화자의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나는 생각한다. 화자는 레즈비언인 딸을 인정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한다. 하지만 그 자신에게 타자에 대한 이해의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왜냐하면 화자는 젠의 부당하고 불쌍한 처지에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자신이 가진 몇 안되는 것을 희생해가면서도 젠의 부당함에 항의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 선뜻 자신과 아무 관계 없는 치매 노인을 집으로 데려올 수 있는 것 아닐까. 이런 화자의 모습은 다른 대학강사들의 부당한 해고에 맞서 싸우는 그린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다.
따옴표 없이 진행되는 소설 속의 발화. 한국 현대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식이다. 익숙해도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이번에는 왠지 모르게 눈길이 갔다. 생각과 혼잣말과 대화 사이의 경계가 애매해지는 순간. 그 느낌이 정말 좋았다. 어째서? 라고 묻는다면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이런 문체는 여성적이고 한국적이라는 생각을 잠깐 했는데, 그건 그냥 내 편견일 수도.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요즘들어 눈여겨보는 부분.
민음사에서 나오는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에 한번도 실망해본적이 없다. 장강명의 <한국의 싫어서>,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 그리고 이제 김혜진의 <딸에 대하여>. 소설 속에서만 존재하는 메타포가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세계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책들이라 좋다.
이 시대의 부조리함을 이 세대의 시선으로, 이 세상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시리즈. 그래서 이 시리즈라면 앞으로도 고민하지 않고 읽을 수 있겠다.
<딸에 대하여>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 소설이다. 이해도 없고, 용서도 없이 그냥 그렇게 끝난다. 하지만 그래서 더 좋았던 것 같다. 남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사회적 약자를 이해하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은 일이고, 자기가 다른 사회적 약자라면 자신의 취약함 때문에 때로는 다른 약자를 이해하기 힘들다. 그게 이 소설에 나오는 엄마와 딸 사이의 관계가 아닐까. "나"는 끝도 없는 노동에 시달리지만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나"의 딸은 성소수자이고 그 때문에 경제권까지 위협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하면 안되는 행동은 쉽게 알 수 있지만, 내가 해야하는 행동은 알기 힘든 법이다.
그러므로 이제 나는 저기 반대편에 모여 선 사람들처럼 말할 수 없다. 그래서는 안 된다. 이 애들에게 보이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조용히 침묵하라고 명령하고, 죽은 듯 지내거나 죽어 버리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 편에 내가 서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애들에 대한 완벽한 이해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 서 있는 걸까. 서 있어야 할까 (167).
이 문제에 대해 이 이상의 답을 낼 수는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오랜 세월 어떤 한 가지 방식으로 살아온 사람이 갑자기 바뀌기는 힘들다. 그건 소설의 화자 스스로도 통감하는 바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생각을 바꾸지는 못해서, 적어도 잔인해지지 않을 수는 있다. 그게 이 소설의 화자가 선택한, 그리고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일이기도 하고.
나는 이 애들이 측은하다. 가엾고 불쌍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호기심을 보이다가 다시금 멀어지는 저 많은 행인들과 다를 바가 없다 (167).
화자는 이해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그건 작가도 마찬가지 아닐까. 김혜진 작가의 <중앙역>을 감명깊게 읽었었는데, 그건 그가 노숙자를 그려내는 시선 때문이다. 작가는 이 거리를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아닌 남의 아픔을 나서서하는 것의 어려움을. <딸에 대하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김혜진 작가가 선택한 이 주인공의 모습이 너무나도 마음에 든다. 왜냐하면 "나"는 억지가 없는 인물이라서다. 그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대한민국 아줌마"라는 전형적인 인물이면서, 그 전형성 때문에 개인의 모습이 사라지지 않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딸을 만나면서 화자는 "나는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누구든 언제든 나를 향해 너무나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내보일 것만 같다" (8)는 생각을 한다. 이 말을 읽으면서 왜 엄마가, 할머니가, 내가 아는 다른 아주머니들이, 나랑 같이 "젋은 애들이나 가는 곳"을 불편하게 여기시는지 처음 이해가 되었다. 이런 면에서 화자는 전형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또 화자는 소설에 등장하는 새댁이나 교수 부인과 같은 전형적인 인물들과 분리되어 있다. 자신이 하는 일을 심각하게 여기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 사람은 내가 다른 많은 보호사들처럼 이 일을 그저 시간이나 때우고 돈을 벌기 위해서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나는 절대로 그런 식으로 일을 해 본 적이 없다. 결혼 전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에도. 딸애를 낳고 교습소에서 일할 때에도. 도배를 하고 유치원 통학 버스를 몰고 보험 세일즈를 하고 구내식당에서 음식을 만들 때에도 나는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잊은 적이 없다 (115).
나는 또한 요양원에서 만난 젠과 독특한 관계를 맺는다. 젠에게 있어 자신을 돌봐주는 "나"는 엄마이기도 하고 딸이기도 하다. "나"에게 있어서도 젠은 소소한 일들까지 챙겨줘야하는 딸이기도 하고 또 자신의 문제를 토로할 수 있는 엄마이기도 하다.
작가는 젠과 화자 사이의 관계를 통해 화자의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나는 생각한다. 화자는 레즈비언인 딸을 인정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한다. 하지만 그 자신에게 타자에 대한 이해의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왜냐하면 화자는 젠의 부당하고 불쌍한 처지에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자신이 가진 몇 안되는 것을 희생해가면서도 젠의 부당함에 항의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 선뜻 자신과 아무 관계 없는 치매 노인을 집으로 데려올 수 있는 것 아닐까. 이런 화자의 모습은 다른 대학강사들의 부당한 해고에 맞서 싸우는 그린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다.
따옴표 없이 진행되는 소설 속의 발화. 한국 현대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식이다. 익숙해도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이번에는 왠지 모르게 눈길이 갔다. 생각과 혼잣말과 대화 사이의 경계가 애매해지는 순간. 그 느낌이 정말 좋았다. 어째서? 라고 묻는다면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이런 문체는 여성적이고 한국적이라는 생각을 잠깐 했는데, 그건 그냥 내 편견일 수도.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요즘들어 눈여겨보는 부분.
민음사에서 나오는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에 한번도 실망해본적이 없다. 장강명의 <한국의 싫어서>,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 그리고 이제 김혜진의 <딸에 대하여>. 소설 속에서만 존재하는 메타포가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세계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책들이라 좋다.
끝이 없는 노동. 아무도 날 이런 고된 노동에서 구해 줄 수 없구나 하는 깨달음. 일을 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이 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 그러니까 내가 염려하는 건 언제나 죽음이 아니라 삶이다. 어떤 식으로든 살아 있는 동안엔 끝나지 않는 이런 막막함을 견뎌 내야 한다. 나는 이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아 버렸다. 어쩌면 이건 늙음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이 시대의 문제일지도 모르지. 이 시대. 지금의 세대. 생각은 자연스럽게 딸애에게로 옮겨 간다.
이 시대의 부조리함을 이 세대의 시선으로, 이 세상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시리즈. 그래서 이 시리즈라면 앞으로도 고민하지 않고 읽을 수 있겠다.
reflective
sad
medium-paced
Plot or Character Driven:
Character
Strong character development:
Yes
Loveable characters:
Yes
Diverse cast of characters:
Yes
Flaws of characters a main focus:
Yes
emotional
reflective
medium-paced
Plot or Character Driven:
Character
Strong character development:
Complicated
Loveable characters:
Yes
Diverse cast of characters:
Yes
Flaws of characters a main focus:
Yes
Die Tochter wird ausschließlich aus der Perspektive der Mutter geschrieben. Eine konservative, koreanische Frau Ende 60 erzählt von ihrer Arbeit als Pflegerin und dem Leben mit ihrer Tochter und deren Lebenspartnerin. Das Buch habe ich für den Asian Readathon ausgesucht und jetzt verspätet beendet. Es braucht eine Weile um reinzukommen, aber ich glaube dass die Beschreibungen über das Leben und die Gefühlswelt der älteren Frau sehr akkurat sind und das Verhalten dieser Generation gut widerspiegeln. Es erklärt für mich auch wie ältere Menschen sich verhalten und die generelle Ablehnung gegen die lgbt Bewegung dieser Generation selbst wenn es um das eigene Kind geht und das Gehirn nicht mal versucht es zu rationalisieren.
emotional
reflective
medium-paced
Plot or Character Driven:
Character
Strong character development:
Yes
Loveable characters:
Yes
Diverse cast of characters:
Yes
Flaws of characters a main focus:
Yes
hopeful
reflective
slow-paced
Plot or Character Driven:
Character
Strong character development:
Yes
Loveable characters:
Complicated
Diverse cast of characters:
Yes
Flaws of characters a main focus:
Yes
Graphic: Homophobia, Violence, Abandonment
CW: homophobie
Wichtiges Thema, gutes Setting, aber ich bin nicht gut reingekommen und hab zu wenig “gefühlt”, die Story war mir also fast egal. Daher insgesamt nur ok.
Wichtiges Thema, gutes Setting, aber ich bin nicht gut reingekommen und hab zu wenig “gefühlt”, die Story war mir also fast egal. Daher insgesamt nur ok.
emotional
reflective
sad
medium-paced
Plot or Character Driven:
A mix
Strong character development:
Yes
Loveable characters:
Complicated
Diverse cast of characters:
Yes
Flaws of characters a main focus:
Yes
Moderate: Hate crime, Homophobia, Misogyny, Sexism, Lesbophobia
Minor: Injury/Injury detail
emotional
reflective
fast-paced
Plot or Character Driven:
Character
Strong character development:
No
Loveable characters:
No
Diverse cast of characters:
No
Flaws of characters a main focus:
Yes
reflective
slow-paced
Plot or Character Driven:
Character
Strong character development:
Yes
Loveable characters:
No
Diverse cast of characters:
No
Flaws of characters a main focus:
Yes
challenging
emotional
hopeful
reflective
sad
medium-paced
Plot or Character Driven:
Character
Strong character development:
Yes
Loveable characters:
Yes
Diverse cast of characters:
Yes
Flaws of characters a main focus:
Y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