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bysky1 's review for:

농담 by Milan Kundera
5.0

같은 작가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소설적인 묘사를 생략한 채 사건을 전달하는 기사문처럼 건조하여 글 읽는 재미를 거의 느낄 수 없었던 데 비해 '농담'은 인물과 배경을 손에 잡힐 듯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어 그와 정반대의 소설적 재미를 선사한다.
여러 등장인물의 시점에서 번갈아 가며 서술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소설은 학창 시절의 농담으로 시작된 주인공 루드비크 얀의 굴곡진 인생을 마치 블랙 코미디처럼 보여준다. 얀의 모습에서 타인과의 진정한 소통을 하지 못한 채 현실과 유리된 사변의 벽에 갇혀 있는 지식인의 모순을 볼 수 있었다. 그의 그러한 공감 불능은 그로 하여금 인간관계에서 실상과는 동떨어진 자기만의 허상에 사로잡히게 만들어 종종 자기의 의도나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결과에 부딛히게 하고, 마침내는 아무 거리낌 없이 인간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삼게까지 만든다. 그러나 그 결과 역시 그의 의도와는 다를 뿐이다.
제목인 '농담'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은 계기가 된 도입부의 농담 뿐 아니라 책의 결말 부분, 주인공의 행위가 결국 하나의 농담에 지나지 않았음을 중의적으로 의미한다.